왕후의 성은 허씨(許氏)요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호는 보주태후(普州太后)이니 아유타국(阿逾他國)의 왕녀(王女)라 하고 혹은 남천축국(南天竺國)의 왕녀라고도 하였다.
동한(東漢) 건무(建武) 二十四年 수로왕(首露王) 七年 무신(戊申)七月에 왕후가 아유타국(阿逾他國)으로부터 바다를 건너 이르니 왕(王)이 유천간(留天干)(留天은 사람의 이름)에게 명하여 망산도(望山島)에 올라 망을 보게 하였는데 비단 풍석(風席)을 달은 범선(帆船)이 붉은 깃발을 꽃고 서남방으로부터 북을 향하여 달려 오거늘 왕이 궁성(宮城)의 서쪽에 만전(장막으로 된 임시의 居所)을 베풀고 기다렸다.
왕후가 배를 매고 육지에 올라 고교(高교)(山이름)에서 휴식하고 입은 바 비단바지를 벗어 산신령(山神靈)에게 폐백을 드렸다. 그 곳에 당도하자 왕이 만전에 맞아들이고 이틀을 경과한 다음에 함께 연(輦)을 타고 궁전(宮殿)으로 돌아와 왕후를 삼았다.
한영제(漢靈帝) 중평(中平) 六年(西紀一八九年) 기사(己巳)三月에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이 百五十七歲였다. 옛도읍 토성(土城) 바깥 구지봉(龜旨峰) 동쪽에 장사지냈으니 왕능(王陵)과 三百餘步의 거리가 되고 건해득수(建海得水) 병파(丙破)로서 왕능과 더불어 남북으로 마주 바라보였다.
왕자(王子) 十人을 두었는데 자신이 동쪽 나라에 멀리와서 성(姓)을 전할 수 없음이 슬프다고 하소연하거늘, 왕이 측은하게 여겨 두 왕자에게 왕후의 성을 사성(賜姓)했으니 우리나라에 허씨(許氏)가 이에서 발단되었다. 나라 사람들이 왕후가 처음 와서 배를 맨 곳을 주포(主浦)라 이르고 비단바지 벗은 곳을 능형(綾峴)이라 이르며 붉은 깃발을 바다에 넣은 곳을 기출변(旗出邊)이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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